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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문기사2 - LED의 정체는

이덕환의 과학세상 LED의 정체는
[디지털타임스 2005-04-12 11:56]

반도체가 만드는 차가운 빛
에너지 간격따라 색깔 변화
요즘 교통 신호등 중에는 유난히 밝게 보이는 것이 있다. 큰 할로겐 전구 앞에 색유리를 끼운 기존의 신호등과는 다르게 작은 전구들이 동심원으로 배열된 특이한 모습을 가진 발광다이오드(LED)를 이용한 최신형 신호등이다. LED 신호등은 기존의 신호등보다 훨씬 더 밝고, 수명은 20배 이상 길며, 전기 소비량은 20%에도 미치지 않는다.
우리 눈에 보이는 빛을 만들어내는 가장 쉬운 방법은 높은 온도에서 파라핀과 같은 화석 연료를 태우는 것이다. 등잔불ㆍ호롱불ㆍ관솔불ㆍ촛불 등이 그런 예들이다. 텅스텐처럼 전기 저항이 큰 금속 필라멘트에 많은 양의 전류를 흘려서 뜨겁게 달궈 주어도 빛이 나온다. 형광등처럼 빠르게 움직이는 전자를 이용해서 빛을 만드는 방법도 있다. 텔레비전이나 컴퓨터 모니터로 사용하던 브라운관도 그런 장치다.
모두가 인류 문명의 발전에 크게 기여한 조명 수단이지만 빛과 함께 많은 열이 발생하는 것이 문제가 된다. 조명 장치에서 나오는 열은 아까운 전기를 낭비하게 만들뿐만 아니라 화재의 원인이 되기도 한다.
최근에 널리 쓰이기 시작한 LED는 물질의 양자역학적인 성질을 적극적으로 이용해서 대부분의 전기 에너지를 빛 에너지로 바꾸는 장치다. LED는 전자가 들어갈 수 있는 상태들이 적당한 에너지 간격을 가진 두 종류 띠(밴드)로 나뉘어진 반도체를 이용한다.
그런 반도체에는 두 종류가 있다. 본래 전자가 채워져야 할 아래쪽 띠가 충분히 채워지지 않아서 양전하를 가진 양공(陽孔)이 있는 것처럼 보이는 p형 반도체와 본래 비어있어야 할 위쪽 띠에 음전하를 가진 전자가 들어가 있는 n형 반도체가 그것이다.
그런데 p형 반도체와 n형 반도체를 붙여놓고 전류를 흘려주면 여러 가지 신기한 일들이 벌어진다. 서로 반대의 전하를 가진 p형 반도체의 양공과 n형 반도체가 두 반도체의 접합부에서 만나서 우리 눈에 보이는 가시광선을 방출하는 전기발광 현상이 그런 신기한 현상 중의 하나다. 그러니까 LED가 내놓는 빛은 견우와 직녀가 오작교에서 만나 `양자역학적'으로 사랑을 불태운 흔적인 셈이다. 이 때 방출되는 빛의 색깔은 반도체의 에너지 간격에 의해서 결정된다. 에너지 간격이 작을수록 붉은색이 되고, 클수록 푸른색이 된다. 에너지 간격이 아주 작으면 적외선의 빛이 나오게 된다.
그런 전기발광 효과는 1907년에 영국의 라운드가 처음 발견했지만, 1957년에 미국의 로브너가 갈륨(Ga)과 비소(As)를 넣어서 만든 반도체로 빨강ㆍ주황ㆍ노랑ㆍ녹색을 내는 LED를 개발하기 시작했다. 최근에는 무기물로 만든 여러 가지 반도체를 이용해서 파랑과 흰색을 내는 LED도 등장했다.
LED의 경우에는 흘려준 전류가 거의 전부 빛을 내는 데에 사용되기 때문에 백열 전구나 형광등과는 달리 빛을 내고 있는 동안에도 뜨겁게 달아오르지 않는다. LED의 빛은 낭만적으로 보이는 백열구의 빛과는 달리 냉정하고 차가운 빛인 셈이다. 무기 LED에서 나오는 차가운 빛은 전자 제품의 표시등은 물론이고 첨단 교통 신호등이나 광고판에 널리 쓰이고 있다.
요즘에는 무거운 반도체 대신에 탄소로 만들어진 유기물질을 이용한 유기발광다이오드(OLED)라고 부르는 얇고 가벼운 전기발광소자가 개발됐다. 현대인의 필수품이 되어버린 휴대폰의 컬러 표시창이 대부분 그런 소자로 만든 것이다. 앞으로는 두루마리처럼 둘둘 말아서 가지고 다닐 수 있는 휴대용 플렉서블 디스플레이도 개발될 전망이다. 유비쿼터스 시대의 핵심 장치가 될 것으로 보인다.
LED는 20세기 초에 알아낸 양자역학의 원리를 이용한 것으로, 이해하기 어렵다는 첨단 과학이 우리에게 얼마나 가까이 있는가를 분명하게 보여주는 대표적인 예가 된다.
서강대 과학커뮤니케이션협동과정 주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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